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관광지인 Fisherman’s Warf에 오면 Ghirardelli 초콜릿 건물이 보이는 곳에 이 카페가 있다. Buena Vista. 이 카페는 아이리쉬 커피로 아주 오랜 유명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씁쓸한 기억이 있는 곳이다.

2009년 나는 하늘에서 혼자 떨어져 내렸다. 난 미국에서 살 거야, 하는 당찬 결심만 가지고 최소한의 경비와 그저 굳센 마음만으로 13시간 비행기를 타고 타국에 왔다. 한국에서 유학원을 통해 한 달간 지낼 홈스테이 집을 구하고 왔지만 누구도 마중 나오지 않는 그런 입국이었다.
그 당시 내가 계약한 어학원에는 각국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는데 보통 나보다 아주 어린 친구들이었다.이 친구들은 3개월 미만의 코스로 그저 ‘맛’만 보기 위해 온 친구들이었다. 부모님의 신용카드로 무장한 이 친구들은 얼굴에 빛이 났고 매일이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반면에 나는 비장한 모습으로 매일 잔고를 확인하며 살았다. 29살 꽉 찬 나이에 출국을 반대하는 오빠와 크게 싸우면서 온 미국이기에 난 엄마한테도
‘엄마, 혹시 내가 울면서 전화해도 돈 보내지 마.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내가 알아서 살아갈게.’
라며 사뭇 대담한 말을 던지고 온 것이다. 엄마에게 손을 벌리기에 난 너무 나이가 많았다.그런 이유로난 내 미래에 예측 못한 변수를 최소화하고 닥칠 어려움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했다. 같은 반 어린 친구들이 주말마다 여행을 다닐 때 나는 작은 방 안에서 컴퓨터에 다운로드하여온 Sex on the city를 보며 사라 제시카 파커의 대사를 받아 적고 다시 돌려 보기를 무한반복했다.
그런데 아무리 그런 비장한 나라도 한 달을 그렇게 지내고 보니 너무 답답하고 지친 마음이 들어 주말에 나들이를 나가게 되었다. 마침 같은 학교에 서른이 넘어서 온 같은 처지의 동지를 만나 우리 뽀대 나게 아이리쉬 커피를 마셔보자!!! 하고 의기투합했다.
Irish Coffee는 커피잔에 아이리쉬 위스키를 한잔 붓고 (보통 Jameson 씁니다) 거기에 baleys라는 알코올이 살짝 가미된 크림을 넣는다. 그 위에 뜨거운 커피를 붓고 위에 휘핑크림을 보기 좋게 얹어주면 끝! 위스키와 커피는 의외의 꿀 조합이며 독한 술 마시기가 부담스러운 분도 무리 없이 마실 수 있다. 달콤한 휘핑크림은 덤이다. 생각만 해도 너무 신난다!
지도를 더듬어 도착한 이 카페는 여행객들과 로컬 손님들로 북적였다. 우리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누군가 자리에 안내해주길 기다렸다. 바텐더들이 우리를 흘끗 흘끗 바라봤지만 누구도 우리에게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라며 묻지 않았다. 우리는 슬슬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저 그런 차림새의 얼떨떨한 표정의 아시안 여자 두 명. 우리는 철저하게 무시받았다.
우리 둘만이 정지한 이 공간은 무섭게 바쁘고 모두가 행복하게 떠들고 있는 그런 카페였다. 앉아서 마시고 먹는 백인 여성이 마주 앉은 사람의 어깨너머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흘낏거렸다. 나는 너무 당황스럽고 서러워져 눈이 시큰거렸고 여기에 가자 부추긴 언니는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진 참이다.
우리는 영원 같던 시간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서 있다가 도망치듯이 나왔다. 너무 창피했고 너무 당황스러웠다. 거기서 박차고 나온 뒤, 난 아무 기억이 없다. 그저 너무 서럽고 또 서러웠던 기억뿐이다.
얼마 전 문득 이 카페 생각이 나서 ‘두고 보자!!!!! 진상 좀 떨어주마!!!’ 하며 갔는데… 코로나로 너무 변했다. 텅 빈 안과 역시나 텅 빈 파티오 좌석을 보니 딱히 들어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바쁘던 곳인데… 지금 나는 떠듬거리는 영어를 하지도 않고 신분증도 있는 어엿한 샌프란시스코의 시민이다. 당당하게 들어가서 이번에도 늬들이 날 무시하나 보자, 그런 마음이었는데 김이 샌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콧대 높은 집이라며 가자, 가자 한다. 근데 가려고 나선 날 차가 도둑에게 부품이 털려 망했다.
나를 서럽게 한 커피, 마시고 말 테다. 마시면서 팁도 두둑이 주고 웃으면서 나올텐다. 눈물 젖은 커피 말고 달고 알딸딸한 커피로 그렇게 덮어 씌울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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