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식집에서 파트타임을 뛰는 영미언니는 미국에 온지 4년 6개월이 됐다. 앞으로 반 년이면 비자가 만료되기에 걱정이 많아 둘이 모이면 항상 비자이야기를 했다. 영미 언니는 어학원에서 버틴 시간이 거의 5년인데 비자를 연장하려면 한국으로 돌아가 심사를 받아야한다. 미국 영사관은 학생비자의 심사를 무척 엄격하게 하고 자국내 불법체류자의 비율을 줄이는데 그 목표가 있기에 학생비자를 신청했는데 공부에 크게 목적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학생들의 비자연장을 거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어배우러 왔다며. 5년 어학원 생활이면 할만큼 한거 아니니?'
깐깐한 심사관의 표정이 눈 앞에 선하다. 이미 나이가 30대 후반이 된 영미언니의 고심은 내 고심과도 닿아있다. 29살에 미국에 홀홀단신으로 와서 32세가 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영미 언니의 고민은 우리 누구와의 고민과도 같았다. 미국에서 몇 년을 살아낸 학생들은 나이롱 학생들일지라도 여기 문화에 익숙해지고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살았기에 한국에 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미국 와서 산 몇 년간의 경험만큼 한국에서는 공백이 생기기때문에 돌아가고 싶어도 빈털털이로 0 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한국의 친구들은 미국에서 몇 년이나 살다왔다고 뭐라도 될거라 기대를 하고 부모님은 내가 영어를 엄청 잘 할거라 기대를 하시는데 실상은 그냥 눈치로 대충 편하게 알아듣는 정도이다. 한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는 야무진 친구들은 출국 1년 반 전부터 영어자격증을 준비를 한다. 그거라도 들도 들어가야 어디가서
'아 나 미국에서 몇 년 살다와서 공백이 있는데 그 동안 자격증 좀 땄어.'
라며 들이밀 건덕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도 저도 아닌 사람이 한국으로 돌아갔는데 영어도 제대로 못하고, 그 동안 돈도 다 썼고, 경력으로 내세울 변변한 자격증도 없으면 우울증으로 고생한다. 삶이 허무하게 텅 비는 것이다. 미국에서 사는 동안은 어쨌든 어학원도 성실히 다니며 좆빠지게 고생하며 돈도 벌어서 월세도 내고 어디가서 밥 먹으면 단 15%라도 팁도 주고 나오며 살았는데 한국으로 돌아가면 뭘 어떻게 살았냐는 질문만 받게 된다. 보여줄게 없으면 삶을 통째로 날리게 된다. 그러니 한국으로 돌아가기가 정말 어려워진다. 올 때는 뭐라도 되겠지, 그런 심정으로 오지만 실상은 매일 매일을 그저 견디며 나름대로 하루 하루 좀 웃고 좀 먹으면서 그렇게 살 뿐이다.
비자가 1년 6개월 남은 나도 고심이 깊어진다. 남은 6개월도 어물쩡하면 지나갈텐데 한국에 30이 훌쩍 넘어 돌아간 나는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살아야하나. 운 좋게 비자가 연장이 된다고 하더라도 앞 날이 밝지 않다. 이미 노처녀의 나이인데 대체 언제까지 학교를 다니며 살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로리야, 너 거기 스시집 가봤지?"
같이 식사를 하던 영미언니가 물었다.
"어디요?"
"마루스시라고 Polk Street 에 있는거 (가명입니다)"
"아, 네! 거기 알죠. 왜요?"
"내가 거기 인터뷰 보러 가서 사람들 알게 됐거든?
거기 일하는 아줌마 있잖아? 그 아줌마 불법체류자래."
"네? 항상 웃고 밝아보이시던데 불법이에요? 대박...그래보이지 않던데..."
"뭐 불법체류자들은 얼굴에 티 난다니? 일하니까 웃는거지...
미국에 와서 불법체류자 된지 10년이래. 10년 동안 한국에 못 간거지."
"와 대박...어떻게 그렇게 살지? 전 상상이 안가요."
"무슨 사정으로 그렇게 됐겠지. 그래서 그 아줌마 한국식당에서만 일한데. 불법이니까..."
"아..."
자주 가던 커피집 근처에 있던 스시집의 인상 좋고 얼굴색이 환하던 그 아줌마가 불법이라니. 그것도 10년째 그렇게 산다니 정말 충격이었다. 들어보니 처음엔 비자를 가지고 들어왔다가 연장이 안돼 불법으로 쭉 지내면서 한국식당에서 일을 해서 먹고 산다고 한다. 한국 사람끼리 알음 알음 소개를 받고 눈 감아 주고 그렇게 지내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살려니 마음을 먹으면 어떻게든 방법이 생기는 거라고 했다. 영미 언니의 말을 들으면서 내 마음속에서도 묘한 마음이 생겼다.
나도 불법체류자 그냥 할까?
불법체류자가 되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잘 들 산다. 본국에 못 돌아갈 뿐이지만 한국옷, 한국컴퓨터, 한국드라마, 한국전자제품 모두 미국에서도 살 수 있다.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매일을 어학원에서 울며겨자먹기로 보내는 것보다 차라리 그 시간에 돈이라도 버는게 더 이익이라는 아주 현실적이고 극단적인 생각이 들었다. 미국이야 다시 안오면 되고 죽도록 일을 해서 그 돈을 모아서 한국을 간다면 환율차이로 이득도 되고 혹시 사업을 하더라도 밑천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있는 동안만 착실하게 살면 뭐라도 한탕 손에 쥐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파트타임을 하루에 두탕씩 6일을 계산해보니 1년 반이면 꽤 큰 돈이 모이게 되었다. 지금 사는 월세집도 빼버리고 더 싼 곳에서 나와 같은 목적을 갖은 사람을 구해 잠만 자는 집으로 하면 좀 더 돈을 모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프라이버시야 침해되지만 방 값을 나눠서 내면서 돈만 모을 수 있다면야 정해진 시간동안 버티는 것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래, 학교는 제껴버리자.
그냥 돈을 모으자.
그냥 속편하게 불법체류자 눈 딱 감고 되어버리자,
그렇게 결심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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