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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이야기

샌프란에서는 부자(父子)가 울지 않는다-제발 좀 내려주세요!!! ㅜㅜ

 

샌프란시스코를 걷다 보면 도로 위에 복잡하게 얽힌 전깃줄을 보고 놀라기도 한다. 이거 뭐가 잘못된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줄들이 마구 얽혀있다. 이게 대체 뭘까? 정답은 전기로 가는 버스, 뮤니 MUNI이다.

전기줄 지느러미 단 버스벌레 갑니다~!
전기줄에 달려서 버스가 이동합니다.
 

2009년 처음 온 샌프란시스코에서 나는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홈스테이 집에서 학교까지는 버스로 10분 거리였는데 걸으면 50분이 걸렸다. 집에서 대로까지 15분, 대로에서 학교까지 35분쯤이 걸렸다. 일주일을 씩씩하게 걸어 다녔는데 슬슬 버스가 타보고 싶어졌다. 지도로 블락마다 서는 버스정류장과 노선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난 버스정류장에서 호기롭게 버스를 탔다.

정류장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샌프란의 중심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지르는 38 gearly 라인은 24시간을 수시로 운행하며 시민들을 일터로, 학교로, 생업의 현장으로 날랐다. 언제 타도 북적이는 버스는 나에게 큰 부담이었지만 또 사람이 많기에 누구도 나에게 신경 쓰지 않아 안심이 되었다. 10년 넘도록 배워도 쓸모없는 영어는 나를 참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나는 매의 눈으로 버스가 지나쳐가는 블록의 이름을 확인하며 차차 내가 내릴 블록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내려야지, 하는데…

 

뭐야, 그거 어딨지? 정차 버튼? 아니, 다들 내려야 할거 아냐? 아무도 왜 안 누르지? 그리고 부자는 어떻게 울리는 거야 ㅠㅠ!!!!

 

내려야 할 정류장은 코 앞인데 내리는 사람이 없어 버스가 지나친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허둥대는 나를 보고 앞에 아주머니가 뭐라 뭐라 손으로 내리누르는 시늉을 해줬지만, 그게 대체 뭔데요? ㅠㅠ

이렇게 당겨서 내리라고!!!

 

“여기 누가 내려요! 좀 세워주세요!”

 

결국 보다 못한 사람이 소리쳐서  버스가 멈췄다. 모두가 나를 그렇게나 안타까운 얼굴로 쳐다보는데 나는 내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서 너무 당황했다. 그래, 일단 내리자. 근데 뭐야, 문 왜 안 열려? 문은 또 왜 안 열리냐고!!!!!!  내가 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자 또 누군가 뭐라 뭐라 손으로 미는 시늉을 했다. 뭐? 뭐라고요? 밀어요? 아니 버스에서 누굴 밀어요 ㅠㅠ 알고 보니 승객이 버스 문을 살짝 밀면 문이 밀리는 말도 안 되는 수작동 문이었다.

 

한참을 버스 뒤에서 승객들의 아우성을 듣는 나를 보고 결국 운전기사가 문을 열어줬다. 내가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을 때 나는 이미 4블록을 지나친 상태로 한 번도 못 와본 길가에 서 있었다. 버스를 한번 타는데 진이 빠지고 골이 아파왔다.

버스 안의 풍경. 코로나로 버스 승객이 거의 없다.

 

 

대체 이게 뭐야. 버스 타는 게 왜 이리 복잡해. ㅠㅠ  나는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에 왔다. 버스 안에서의 그 몇십 분이 하루 종일 보낸 듯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부자는 울지 않았지만 곽 여사는 울 뻔했다.

 

지금은 버스 타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버스에 타서 어떻게 내릴지 몰라서 혼란스러운 관광객을 보면

 

 ‘거기! 그 노란 줄 당겨요!’

 

라면서 손짓도 하며 알려주는 현지인이 되었다.

 

샌프란에 오면 아버지와 아들은 울지 말자.

대신에 노란 줄을 당기자.

문을 노려보며 서 있지도 말자.

살짝 밀면 열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