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 와서 첫 발을 디딘 순간부터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비자였다. 이 나라에 합법적으로 발을 디딜 수 있는 허가증인 F-1 학생비자. 나는 한국에서 종로유학원을 거쳐 수속을 받고 광화문 어디쯤으로 기억하는 영사관으로 파주에서 새벽 첫 차를 타고 새벽같이 가서 인터뷰를 보고 비자를 받았다. 당시 나는 학생으로 오는 비자여서 5년짜리 학생비자 F-1 비자로 왔고 이 비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학원을 가서 내가 이 나라에 온 목적인 '학생' 신분에 맞게 하루를 보내는 게 최대 목표였다.
학교를 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나가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애초에 미국에 가능하면 정착해서 앞으로 계속 사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처럼 삼삼오오 모여서 쉬는 시간에 한국어로 떠들거나, 학교를 마치고 스타벅스에서 태평하게 한국인 친구과 수다를 떨거나 하는 일에는 하등 취미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이 나라에 적응해서 앞으로 다가올 100% 자급자족생활을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고 그런 나에게 다른 한국인 유학생들이 하는 일은 큰 사치였다. 그런 이유로 남들보다 빨리 일을 시작했는데 일을 하며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가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던 것이다. 무엇보다 애매한 마음으로 영어를 배우는 일은 정말 재미가 없었다. 내가 만약 앞으로 3개월, 길게는 1년만 영어를 배우고 가자, 하는 마음이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집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학비를 충당하며 그냥 용돈 벌이용으로 저녁 알바를 했다면 나는 학교를 즐거운 마음으로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꽉 찬 나이 29살에 내 삶을 책임져야 하는 나는 달랐다. 미국이란 나라에 한 점이 되어버린 나는 태평하게 학교에서 현재 진행형이나 가정법 등을 배우며 의자에 붙어 앉아 있기가 참 어려웠다.
내가 저녁에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하자 학교를 나가는 일은 더더욱 재미가 없어졌다. 일터에서 마주치는 현지인 손님들과 현지에서 정착해 사는 한국인 손님들과의 교류가 훨씬 재밌었고 그들과의 대화에서 내 영어는 누구보다 빠르게 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장에 돈을 넣는 재미를 알고 보니 나는 학교가 정말 무의미하게 느껴져 울며 겨자 먹기로 하루하루 나가서 시간을 때우는 일이 늘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학교를 빠지게 되고 출석 미달로 경고장을 2장을 받고 좀 더 싼 어학원으로 옮겼다. 왜냐하면 일단 학비를 절약할 수 있고 3번 경고장을 받으면 학교에서 퇴학을 시킴과 동시에 학생비자를 종료시키기 때문에 다른 학교로 옮겨 새 출발을 하는 것이다. 명백한 꾀였으나 나는 이 방법으로 3년 차부터 비자를 연장하며 출석 미달로 퇴학당하는 일 없이 무사히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여기서 웃기는 일화 하나.
저녁에 일을 하기 시작하고 몇 달 뒤쯤, 나는 저녁 생활에 익숙해지고 점점 현지인의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그러다 아침에 일어나면 정말 죽을 상을 하고 몸부림치는 일이 많아졌다. 어느 날, 나는 정말 학교가 가기 싫었다. 하지만 이미 2번 무단결석을 했기에 오늘 한 번 더 결석하면 난 아웃이다. 그러나 포근한 침대의 유혹은 너무 달콤해 9시, 10시를 지나서는 그냥 포기하고 제꼈다. 학교를 제끼고집에서 놀며 한가하게 보낸 몇 시간은 좋았지만 하루가 저물고 내일이 다가올수록 나는 공포에 빠졌다. 나 이대로 추방당하는 걸까? 어쩌지...? 밤새 고민한 끝에 다음 날 근처 한인 가정의학과에 찾아갔다. 찾아가서 온갖 아픈 척을 하며 두통이 있다는 둥, 배가 아프다는 둥 우는 소리를 했다. 어제 너무 아파서 학교에 가지 못했다며 진단서를 끊어달라고 했다. 선생님은 잠시 침묵하며 나를 쳐다봤다. 나도 잠시 침묵했다. 나는 고개를 푹 수그리며
말했다.
"어제 학교에 힘들어서 못 갔는데 3번째 결석이라 꼭 이게 있어야 해서요..."
선생님은 한숨을 푹 쉬시고는 종이에 뭐라 뭐라 써주셨고 나는 그 종이를 들고 학교에 찾아가 어제 너무 아파서 학교를 못 왔고 아파서 병원에도 오늘에야 다녀왔다, 라며 우겨서 3진 아웃을 간신히 면했다. 하지만 거짓말에 전혀 재능이 없는 나는 원장 앞에서 거짓말을 하면서도 내 얼굴이 너무 정직하게 표현을 하는 것을 안 봐도 느낄 수 있었다. 얼굴이 화끈대며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와, 다시는 못 할 짓이구나 하고 느껴서 절대 앞으로 이 방법은 쓰지 말자 다짐 또 다짐을 했다.
다음 이야기는 2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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